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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흔적들/이런저런~

택배 해프닝

by JESUS CAMPAIGN 2010. 8. 11.



지난 1일 컴퓨터를 켜려고 전원 버튼을 누르자
퍽하는 소리와 함께 스파크가 튀면서 컴퓨터가 먹통이 됐다
처음엔 불꽃이 책상 위 모니터 뒤쪽에 번쩍 하길래
모니터가 터진건가 했는데
컴퓨터 쪽에 아예 전원이 들어오질 않는 것이었다

바로 뜯어서 이상 유무를 확인해야 했지만
지난 2주 동안의 강행군으로 많이 피곤하기도 했고
월요일 아침 일찍 광주에 가기로 해서
광주에 갔다 오고서야 파워를 교체해서 이상을 확인했다
교회까지 본체를 들고 와서
뜯고 교체하고 확인하고
다시 또 들고 오고

한 번 사면 좀처럼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게 컴퓨터 케이스라
듬직한 녀석으로 한 것이
일이 생겨서 운반하게 되니 상당한 무게라 힘이 많이 든다는

아무튼
그렇게 고장을 확인한 파워를 서비스센터에 보내려고
사무실에 굴러다니는 박스를 하나 가져다가 넣고
지난 주 토요일에 제휴 택배사에 예약을 했다


어제 나가려다가 문득, 화요일쯤엔 가지러 올 것 같아서
경비실에 박스를 맡기며 택배 가지러 올 거니까 보내주십사 부탁을 하고
인도로 떠나는 BBB팀을 배웅하고 오후 늦게 택배기사의 전화를 받았다
택배를 가지러 가는데 집에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였다
사정을 설명하고
'집에 사람이 없어서 경비실에 맡겨두었으니 찾아가시면 됩니다. 택배비는 제가 입금해드리죠.'
교회로 돌아가는데, 잠시 후에 전화가 와서 다른 택배사에서 가져갔다고 한다.

박스에 붙어있던 송장이 화근이었다
보통 택배예약을 하고 발송을 하게 되면
업체에서 송장을 인쇄해서 가지고 오기에, 따로 표기를 안해둔 게 문제가 된 것이다
경비아저씨께서는 송장에 있는 택배업체 이름을 보시고서는
마침 물건 배달하러 왔다가 가는 그 업체 직원에게 반품 물건이 있다며 들려 보내셨고
그 직원은 접수가 늦게 되는 일이 종종 있었던지 그냥 받아가신 것이다.

문제는 박스에 붙어 있는 송장이 어디에서 온 건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고
반품건이었기 때문에 택배 기사는 영수증이나 고객 보관용 송장 등을 전혀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모두 퇴근했을 시간이라
다음 날... 그러니까 오늘 택배사에 전화를 해서 물건을 수배해놓고 기다리니
상담원이 박스를 찾았고 내가 보내려고 했던 곳으로 보내주겠다고 한다
택배비는 착불로 발송해드린다고 하는데, 이 대목에서 빈정이 상해버렸다.

애초에 발송하려던 택배업체는 수리업체와 제휴가 되어 있어서 발송비가 저렴한 상황이고
중간에 박스를 가져간 업체는 제휴관계가 없는 터라 택배비가 두 배 가량 비쌀 뿐더러
실수가 초래한 이 상황에 대한 시간적, 금전적 손해는 나한테 부담하라고 하면서 당연한 것처럼 얘기하니
그냥 넘어가주기가 싫어졌다
택배비가 부담되면 아파트로 다시 돌려보내준다니
멀쩡한 남의 택배를 가로채서(본의는 아니었지만) 결과에 대한 해결은 니가 결정해라... 이런 식이라니

괜히 상담원과 언쟁하기 싫어서,
이 문제에 대해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분을 연결해 달라고 하고 끊었다

잠시 후에 전화가 왔다
남부사업소란다
간단한 사정 설명을 듣고 난 후에, 배송지 주소를 알려달라고 한다
굉장히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분이라고 할까..
이런 일을 처음 경험하는 고객과 경험이 풍부한 직원 사이의 대화
대화를 나누며 밀리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웬지 이 분이 원하는 대로 리드당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합의점은 '일단 물건을 배송지로 가야 한다'
이 부분에서는 직원분도 나도 쉽게 결정할 수 있었고
둘째 합의점은 '제휴업체와 현재업체 상의 택배비 차익 부담은 실수한 쪽에서 책임진다'
이 부분은 상담원과 통화할 당시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었는데,
직원분께서 통상적인 할인 택배비로 가격을 조정해서 발송하는 걸로 정리가 되었다.


정리하면
실수로 다른 업체가 택배를 가져간 상황에서의 시간적인 손해는 내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금전적인 손해는 업체가 부담하는 선에서 해결되었다는..


웬지 모를 씁쓸함은
내가 원했던 것은 몇 천원의 금전적인 이익이 아니라,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지려고 하는 태도였는데
결국, 니가 원한 것은 택배비 손해 안 보는 거 아니냐... 이런 식으로 대화가 끝났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통화한 업체 직원의 다소 고압적이고 풍부한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논리적인 말투에 압도되었다는 것

그래도 위안이 되는 것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언성 높이지 않고 차분히 잘 해결했다는 거?
(언성만 안 높아졌지 말투는 많이 퉁명스러웠을지도)